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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구선수에서 카펫 제조기업의 대표로 - 유성열 대표 ( 1 )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09-10 18:13     조회 : 10    

야구선수에서 국내최고의 카펫을 제작, 판매하고 있는 “얀카페트(THE YANN)”의 유성열 대표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야구선수의 인생을 살다가,돌연히 인생의 진로를 바꿔 카페트라는 업종에서 우뚝선 뚝심의 남자 이야기 입니다.

나의 꿈은 야구

 가지런한 실밥이 톡톡 올라온 새 공을 만지면,왠지 모르게 가슴이 뛰었다아마도 내 야구 인생의 계기가 되었던, 야구공에대한 좋은 기억과 추억 때문일 것이다당시는 1980 년대 초. 정확히는 1982년 이었다. 국내에는화려하게 프로야구 개막의 시대가 열렸고당시 열광했던 고교 야구의 인기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프로야구로 옮겨갔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나에게, 폼 나보이는 야구유니폼은 멋진 야구모자와 더블어 꿈과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나의 가슴을 뛰게 하는 야구의매력에 마음을 빼앗긴 것은, 이때부터 였다지금 생각하면 열정과 정열이지만, 그때는재미고, 다른 친구들의 부러움의 대상이었고, 멋진 생활의연속일 것 이라는 희망에 찬 꿈이 가득 했다.
 


 야구공의 구조를 하나하나 띁어보면 참 재미있게 생긴 것을 알 수 있다. 탄력이 좋은 고무공이 제일 안쪽에, 그 바깥쪽으로는 공의 크기가되는 만큼 여러 종류의 실이 규칙적으로 감겨있다. (어린 시절에도 이런 것 에 관심을 보인 것을 보면지금의 카페트 인생은 나의 천직인 것 같다.) 그리고는 아령같이 생긴 가죽 두 장을 겹쳐놓고, 빨강색의 실로 꿰맨다

결론부터 애기하면 톡톡 튀어나온 실밥, 이런 생김이 나는 좋다. 그 실밥 때문에 야구의 묘미가 시작되었다고생각 한다. 야구의 시작은 투수의 투구부터다. 투수는 피칭때 투구의 본질인 회전과 속도를 제어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제어의 장치는 톡톡 튀어나온 실밥에서부터시작된다
그리고 공은 정직하다. 투수의 노력과 재능과 그날의컨디션에 따라서 결과가 나온다. 이런 투구의(야구공) 본질인 정직과 노력이 나의 어딘가에 자리 잡혀서, 이후 사회생활과카페트 사업을 하는데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더얀카페트 매장 입구에 전시되어 있는 오드리햅번 카페트


 

야구선수가 되자

여하간, 그래서 인지 내가 다니던초등학교에도 야구부가 생기게 되었고, 난 당당히 테스트를 거쳐 합격하였다. 천성이 나름 성실하고, 열심히 하였기에 그후, , 고등학교를 "체육특기자" 그러니까, 전문 야구선수로 진학하였다.  대학도"체육특기자"로 진학 하였고, 체육학을전공하게 되었다.
운동선수로서의 성공은 매우 힘이 든다당시, 야구부가 있는 대학은 10개가조금 넘었으나, 고등학교는 60개가 넘었다. 모두가 바늘구멍 같은 프로선수가 되기 위한 목표 하나였다보통 감독들이나 트레이너들은 힘들 때 한번 더 해야 그때부터 진정한 운동이 된다고말한다.
그렇지만 난 숨이 꼴딱 넘어가는 고통의 순간에 다섯번을 더했고,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연습에 연습을 하였다. 왜냐하면 나는 사실야구를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몸을 가지고 있었다. 초등학교 때 사고로 치명적인 중지손가락 부상을 입었기때문이다. 사고 이후, 여러 차례의 수술과 치료가 거듭되었고, 주위에서는 야구를 그만두라고 했다. 하지만 나의 고집은 꺾지 못했다. , 그렇게 남들보다 더, , 더 한계와 극한을 넘기 위한 노력과 연습을 하였다.


선수 생활하는 동안 난 늘 동료들보다 조금씩 우월했고 결과도 만족스러웠다. 아마 자신감이었을지도 모르겠다운동하다가 답답하고, 부족하면 집에가지도 않고 학교 운동장에서 밤을 지 세웠다. 배트를 잡은 손은 걸레처럼 헤지고, 이내 벗겨진 살 갓의 통증을 없애기 위해 강력 접착재를 손바닥에 바르기도 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자신감이 노력의 결과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누군가는 죽기살기로 연습해서 기본을 유지하고, 누구는 놀기를 좋아하는데도, 담장을 훌쩍 넘기는 타구를 날린다아이러니하게도 선수기간동안 놀라운 재능을 가진 많은 친구들이 안타깝게도 운동을 그만두었고, 자신의 능력이 부족해도 끈기 있는 사람들은 훨씬 많이 남게 된다.  
너무나 부러운 능력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의포기 이유는 어이없게도 운동이 힘들다는 것과, 선배나 감독님이 너무 무섭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재능과 노력이 함께 했을 때 진정한 승자가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 고등학교에서의 고민이 진학이었다면, 대학에서의 고민은, 곧 맞닥뜨려질 생활이었다대학졸업에 즈음한 선배들 중 극히 일부만 프로선수로서 지명이 되고, 나머지 선수들은 졸업 후(이미 군대 가기는 좀 늦은) 군대 가거나, 제대 후에도, 새로운돌파구를 찾으려,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다. 고민했다나의 노력으로 재능을 넘어 설수 있을까?


 선수 생활을 마감과, 그 극복(꿈……현실과 마주하다.)


나는 나의 한계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대학 2학년 1학기에 야구를 포기하였다.
모든 것이 함께 끝나는 느낌이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노력과, 함께할 수 있는 나의 재능을 찾아야만 했다다른 생각을 해 본적이 없으므로 공부는 당연히 안해왔고, 몸만 덩그러니 남은 꼴이었다.
압박이 몰려왔다. 냉정해야 했으며, 그때부터 나의 위치를 체크하기 시작했다주변에 끈기와 노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타고난재능도 가지고 있는..(정말 부러웠던……)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지금까지 나에게, 정의란,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 이었다면, 타고난 재능까지 겸비한 사람에겐,, 상대적으로, 발전의 한계를 가져다 준 것이 스포츠였다.
그런 이유로 그만두겠다는 마음을 먹고도 하나의 후회나 아쉬움이 없었다난 최선을 다했고, 이게 야구선수로서는 종착점이란 생각이 들었다또한 지금 같은 에너지를 다른데 쓸 수 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늦지 않을 거라고,, 충분할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 스스로에게 자문을 해 보았다
너 자신은 다른 어떤 것에도, 지금 같은 열정과 노력을 할 수 있겠니?
그런 마음 가짐을 가지고 사회생활을 시작을 하였다. 운동선수로서 육체의 고통의 한계를 넘나들던 나의 경험은 사회에서 큰 도움이 되었다. 지금도 뼈 속 깊숙한 곳에서, 몸은 그 한계를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있다

새로운 신세계 新世界로 들어가다
사회에 입문. 몇 군데 회사에서 상당한 전투력(영업)과 경험을 하고, 침구브랜드로서 백화점에 입점 한 회사에 입사하여, 4년이 좀 넘었을 때 인 것 같다, 업계 선배로부터 러그, 카펫을 수입하는 회사로 와서 일 좀 해줄 수 없겠냐는 권유를 받았다같이 회사 좀 일으켜 보자는 말에, 직원이 70명이던 회사에서 4명인회사로 옮기게 되었다.

러그카펫이름도 생소했다통상 우리가 알고있는 모두는 “러그” 이며, 상업 공간에 시공(접착제를 써서 바닥에 붙인)것들이 카펫이라고 불리는 정확한 어원도 알게 된 것도 이때였다나의 몸이 야구를 기억하는 것과 같이, 카펫에 관련 영업도 열심히 하였다.
그렇지만 열심히 하는 것과 고객 취향과만족을 시키는 것은 틀리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영업 활동은 곧 제동이 걸렸다. 당시는 수입 유통이 전부였음으로, 결국 여기저기 들러서 “우리 회사가 가지고 있는 재고 중에 고르세요.”라 외치고 있는게 전부라는 것을 깨달았다.


고객들은 나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나는 고객들이 원하는 제품들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할 수 없었고, 원하는 제품을 제작 하여 만족시켜줄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런 제품이 없었고, 만들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새로운 거래처를 개척하고, 많은 영업 처와 일을 하면 할수록 더욱 더 그러한 결핍은 심화되었다.
그러던 중에  " 카펫은 한국에선 못 만드나? ", 국산은 없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런 저런 생각과 조사중 내린 결론은 “별도의 마켓을 형성하는게 어려웠기 때문이다.”라 내렸다또한 국내 제작관련 동향을 파악해보니, 시공용 제품(바닥에 붙이는 고정형)을 제외하곤, 우리가 가정에서 쓰는 카펫, 러그의 생산은 분류하기도 어려운 만큼 생산업체가 미약하거나 없었다. 그래서 고객을 위해 새롭게 제작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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